공지사항
사용 가이드
📰

[조선일보]빌딩·한우·와인 이어 경주마도 질주… 조각투자 전성시대

발행일
2023/03/21
태그
마사회 “조각투자 플랫폼 내년 출범”
지난 14일 제주시 한국마사회 제주목장에서 올해 첫 국산 경주마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소액 투자로 값비싼 경주마의 마주(馬主)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마사회는 주식 투자처럼 간편하게 경주마의 지분을 사고 팔 수 있는 조각 투자 플랫폼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내 말[馬]이 이번 주말 과천 경마장에서 경기를 뛴다네. 부계 혈통이 좋고 체격도 커서, 승률이 높은 편이야. 얼마에 샀냐고? 10만원 투자했다네.”
지금은 허풍처럼 들리는 이런 자랑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던 경주마에 일반인도 소액으로 ‘조각 투자’ 할 수 있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한국마사회는 지난달 경주마에 대한 조각 투자 사업이 현행법상 가능한지 내부 검토를 진행한 결과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크라우드펀딩(인터넷 소액 모금)이나 투자계약증권(공동 사업에 투자 후 손익을 배분하는 증권) 등의 형식으로 다수의 투자자가 경주마에 지분 투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향후 상품성 등에 대한 추가 검토를 바탕으로 이르면 내년 말까지 조각 투자 플랫폼을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각 투자란 개인이 혼자서 투자하기 어려운 고가의 자산들을 지분 형태로 쪼갠 뒤 여러 투자자가 공동으로 투자하는 방식이다. 최근 부동산과 음악 저작권 등 다양한 자산 시장에 불고 있는 조각 투자 열풍이, 평균 가격이 수천만 원대를 호가하는 경주마 시장까지 확산한 것이다. 금융투자 업계에선 “조각 투자 대상이 점점 다변화하면서 자산 종류를 가리지 않고 보편적인 투자 방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경주마·미술품·한우… 없는 게 없는 조각 투자 시장
조각 투자는 요즘 금투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아이템 중 하나다. 소액으로 투자하고 싶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와 새 시장을 만들려는 핀테크 업체들의 수요가 맞아떨어지면서 관련 시장이 커지고 있다. 이미 상업용 부동산, 미술품, 음악 저작권, 한우, 시계·와인 등 고가품 등을 대상으로 한 조각 투자 플랫폼이 만들어졌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미술품 조각 투자 시장 규모는 545억원, 하반기는 그보다 많은 900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난 2020년 출범한 한우 송아지 조각 투자 플랫폼인 ‘뱅카우’엔 2년 만에 송아지 1500여 마리가 투자 대상으로 등록됐다.
이번에 도입될 경주마 조각 투자도 기존 조각 투자와 같은 ‘지분 투자’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투자금 10만원으로 시가 1억원짜리 경주마의 지분 0.1%를 취득할 수 있다. 이후 말 가치가 상승해 2억원이 되면 지분 가치도 20만원으로 올라, 차익을 보고 팔 수 있다. 또 경주마가 받아오는 경마 상금도 지분율만큼 나눠 받는다. 주식으로 치면 ‘시세 차익’과 ‘배당금’을 모두 노릴 수 있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이미 경주마 조각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토큰 증권 도입으로 더 커지는 시장
최근 금융 당국은 조각 투자에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한 ‘토큰 증권’을 도입하기로 했다. 기존 증권과 달리 거래 장부(원장)를 투자자들이 나눠 갖는 방식이다. 그간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조각 투자를 제도권 안으로 넣으려는 조치이기도 하다. 토큰 증권이 조각 투자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토큰 증권이 도입되면 대부분의 조각 투자는 토큰 증권으로 전환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특히 조각 투자 형태의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 상당수가 토큰 증권으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 업계도 토큰 증권 플랫폼을 새로 구축하며 금융 당국에 화답하고 있다. KB증권은 작년 11월부터 SK C&C와 토큰 증권 거래 플랫폼 구축을 준비해 올해 상반기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또 신한증권과 에이판다파트너스가 공동으로 제안한 블록체인 기반 금전채권 신탁수익증권 거래 플랫폼은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의 혁신 서비스로 지정됐다. 미래에셋증권은 한국토지신탁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신탁수익증권 방식의 토큰 증권 서비스 제공을 위해 내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금투 업계 관계자는 “토큰 증권이 실제 법제화돼 조각 투자가 제도권으로 편입되면, 조각 투자 종류도 더 다양해지고 시장 규모도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순완 기자